2011/12/15 08:18

공지 Society

시가 아름다워서 읽고 쓰는 것이 아니야. 인류의 일원이기 떄문에 시를 읽고 쓰는 것이지. 인류는 열정으로 가득 차 있어. 의학, 법률, 경제, 기술 따위는 삶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것이야. 하지만 시와 미, 낭만, 사랑은  삶의 목적인 것이지.
                                                                                                                                                   -죽은 시인의 사회 中

 인문학적 가치가 소외되는 현상을 수요가 줄었기 때문에 공급이 줄었다는 '법칙'으로 논증하는 현실 속에서 나는 무엇을 해야하나, 삶의 목적이 비현실이라고 정의되는 죽은 시인의 사회 속에서 나는 무엇을 해야하나. 당신은 어떤가? 

 


2010/08/23 22:12

청춘나비소극장 <바리데기> 사랑을 드리면 살림살이 좀 나아지나요? Movie

 <바리데기>는 버려진 딸이 아버지를 위해서 저승까지 약을 구하러 간다는 설화이다.(전설의 고향에서 많이 보았던 것 같다) 극에서는 줄거리가 약간 달라지긴 했지만 그것은 무대가 제약하는 공간 때문으로 보이고, 사실 설화를 거의 그대로 차용한 연극이다. 같이 연극을 본 두 분은 배우들의 열정과 실력 때문에 좋았다고 했지만 솔직히 나는 그저 그랬다. 개인적으로, 이런 '가족 사랑 캠폐인'류를 좋아하지 않는다. 눈이 먼 바리공주는 자신이 버려졌음에도 알지도 못하는 부모의 병을 고치기 위해 저승을 가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녀는 자신을 버린 그들에게 한줌 원망도 하지않고 무조건적인 사랑을 보인다. 이승에서 볼 수 없었던 그런 그녀의 '효심'에 구천을 떠도는 귀신들을 감동시키고 저승으로 가게 한다. 

 이런 바리의 효심과는 반대로, 여섯 언니들은 아버지가 죽어감에도 자신의 안위나 재산, 그리고 남자친구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다. 물질주의, 개인주의, 쾌락주의에 빠진 지금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에 대한 노골적인 은유이다. 그리고 이 연극은 바리의 효심을 보여주며 꾸짖는다. 태어나자마자 버려진 바리가 보여주는 부모님에 대한 사랑을 봐라! 얼마나 눈물 겹나, 그리고 너희들은 얼마나 이기적인가!! 라며. <바리데기>는 왜 그들이 황금만을 바라보게 되었는지, 무엇이 그들을 즉각적인 쾌락만을 찾게 했는지에 대한 추적은 뒤로한채, '사랑을 하라!'라는 경구만을 설파하며 그것을 해결책으로 제시한다. 잘못을 하더라도, 부모에게 효심을 다하는 착한 바리의 이상모델은 사실 부모만이 원하는 모델이 아니다. 이 맹목적인 사랑은 조선시대에 왕을 어버이로 받들어 모시던 백성들에게도 요구됐고, 군부독재시절 때 자신들의 삶은 각박할지라도 가파르게 올라가던 빌딩과 GDP를 보며 애국심을 느끼던 '국민'들에게도, 노동조합은 빨갱이라서 사장님이 인상시켜주신 임금에 감사해하는 지금을 사는 노동자에게도 요구됐다. 사랑만 드리면 살림살이 좀 나아진답디까?


2010/08/15 14:10

용천지랄소극장 <부족한 그대로 동지> Movie

 제목에 동지는 정치적 지향점이 같은 동지라기 보다는 똑같이 상처입고, '부족한' 그들의 삶 속에서 같은 여성성을 지녔기에 쓴 모양이다.<부족한 그대로 동지>는 남성성으로 지배되는 한국사회에서 살아가는 3명의 여성들(특히나 예술계에 종사하는)의 이야기이다. 은주와 선희, 미영은 같은 연극영화학과에 다니는 선후배들이고, 같이 살림을 살 정도로 끈끈한 정을 나누었다. 하지만 그들은 엎어지고 깨지며 상처입는다. 그리고 그녀들이 상처를 입는 과정에서는 남성이 있다. 극중 나오는 4명의 남자들은(이 4명의 남자들은 모두 한 사람이 연기하였다. 여러명의 남자들을 '남성'이라는 하나의 괴물로 변환시킨듯 하다.) 사회 곳곳에 스며들어 그녀들을 괴롭힌다.

 은주는 그녀가 사랑하는 남자들을 위해서 미국, 일본, 중국을 마다하지 않고 따라나서지만, 번번히 그들에게 버림받아, 그녀가 사귀는 남자들을 집착하고 의심하는 병에 걸린다. 선희는 방송매체에서 연기자를 꿈꾸지만 PD나 감독, 그리고 매니저에게 성접대와 술접대를 강요당하며, 그녀의 꿈이 짓밟히고, 결국 기획사의 돈을 갚기위해, 술집 마담이 된다. 자신의 꿈을 위해 아직도 대학로에서 연극을 하고 있는 미영 역시도 전남편 현우에게 버림받아 깊은 상처를 가지고 있다. 이들의 상처들은 주류가 될 수 없는 그들의 성 정체성과 주류가 될 수 없는 분야에 꿈을 가지고 있기에, 더욱 깊어지고, 곪아간다. 현재와 과거의 장면 전환이 단지 조명의 전환으로 해결 될 수 있을 만큼, 그들의 상처는 언제나 반복적이고, 지속적으로 나타난다. 이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으로 은주는 또 다시 태국으로 떠나고, 선희는 자신을 좋아해주는 연하남을 만나고, 미영은 남성들이 좋아할만한 예쁜 드레스를 입는다. 그들의 치유는 가능한 것일까.

PS
초연을 본 것이었다. 아마도 배우들의 친구가 많이 왔는지 반응들이 열렬했다. 약간의 미소를 띠울장면에(심지어는 눈물지어야할 장면에도) 너무 과하다 싶을 정도로 크게 웃는(이 웃음 때문에 대사를 여러번 못 들었다.) 관객 때문에 불편했다. 그 관객들의 웃음이 '동지'들을 위한 웃음이 아니라, 반응 해줘야 한다는 '동정' 같은 것으로 다가왔기에 더 불편했다. 


2010/08/12 02:04

찰리 채플린(Chaplin), 그의 미래를 예견한 영화 <Modern times, 모던 타임즈>(1936) *Chaplin(찰리 채플린)


  <모던 타임즈>는 채플린의 영화 중에서 가장 유명한 영화이다. 이 영화를 보지 못한 사람들도, 몇몇 장면들은 자료화면으로나마 보았을 것이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준 영화이고, 그의 재치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대공황을 시대적 배경으로 하고 있는 <모던 타임즈>는 공장에서 실직한 부랑자와 실직한 홀아버지의 딸인 소녀의 사랑이야기이다. 가난한 두 연인의 사랑을 담아내는데 있어서, 이전 영화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큰 무대와, 음성을 포함한 특수효과(?)들을 사용하고 있다. 
<시티 라이트>의 앞 부분에서 조각상이 등장한 것 처럼 <모던 타임즈>의 앞부분에도 
이런 상징을 담은 장면이 등장한다. 가축떼들이 몰려 나오는 장면 바로 뒤에 노동자들이
몰려나가는 장면을 의도적으로 삽입하여 노동자와 가축을 동일선상에서 비교했다.
<모던 타임즈>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 속도를 끊임 없이 올리는 기계에 맞추어서 단순
노동을 반복하는 노동자의 인간소외 현상을 우스꽝스럽게 표현한 장면. 마치 기계의
일부분 처럼 일하는 그들의 삶을 표현하기 위해, 실제로 기계의 일부분이되는 방법을 택한다. 
  사장이 현장에 나가지 않고 카메라로 노동자들을 감시하는 장면. 이 장면을 보고
채플린의 비범함에 놀랄 수 밖에 없었다. 70여년 전에 채플린은 자본가들이 
'카메라'라는 수단으로 노동자들을 감시하며 이윤을 축척할 것이라고 예견했다. 
  영화 속 채플린은 시위대 앞에서 깃발을 잘못들어, 공상주의자로 오인받고 감옥에 갖힌다. 대공황으로 오히려 감옥 속에서 안락한 삶을 보내는 그는, 감옥에 나오자마자 다시 감옥에 들어가려고 한다. 진일보한 '현대'에서 감옥이 가장 안락한 세상이 되는 모습을 보여주며, 현대사회를 풍자한다. 그의 미래를 예견이라도 한듯 채플린은 16년 후 <모던 타임즈>에 삽입한 저 자막 처럼 공산주의자로 오인받고 메카시즘의 광풍에 휘말려 미국에서 추방당한다.






  <모던 타임즈>의 명장면 중 하나. 이 영화에는 굉장히 많은(??) 대사들이 등장하지만 채플린은 단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유성영화에 비판적이었던 채플린은 부랑자가 말을 하는 순간 더 이상 부랑자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대사를 도무지 기억할 수 없는 부랑자는 소매에 가사를 적어 두지만, 이것이 춤추던 중 날아가버린다. 당황하며 가사를 찾는 그의 표정과 몸짓 때문에 춤이 더욱 재미있다) <Je cherche apres Titine>라는 프랑스 노래를 그는 대충 프랑스어를 흉내내며 아무런 의미가 없는 말들을(우리나라 개그맨들이 중국어나 일본어를 흉내내듯) 내뱉는다. 혹자는 이것이 유성영화에 대한 그의 조롱이 담겨있다고 했다.

그의 세 번째 부인과 손을 맞잡은 채플린, 그녀는 채플린의 신부 중 유일하게 20대였다.(나머지는 10대..)

  이 영화에서도 고아가 등장하고, 어김 없이 경찰들은 이 고아를 고아원으로 잡아가려고 한다. 채플린은 영화 <키드>에서 처럼 그 아이의 손을 잡고 같이 도망쳐 나온다. 끝이 보이지 않는 막막한 길을 걸어가는 소녀는 더 이상 살수 없을 것 같다 말하지만, 채플린은 희망을 말한다. 그리고 그의 특유의 웃음을 지으며 소녀가 웃길 바란다. 앞이 보이지 않는 '모던 타임'을 살아 가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채플린은 그런 웃음이나마 만들어주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2010/08/10 23:54

찰리 채플린(Chaplin), 도시를 밝히는 빛이되다 <City Lights, 시티 라이트>(1931) *Chaplin(찰리 채플린)



 <City Lights>는 눈이 먼 꽃팔이 소녀를 사랑하게된 방랑자의 이야기이다. 더러운 옷에 무일푼인 그는, 눈이 보이지 않는 그녀를 통해서만, 신사가 되었다. 홀어머니(할머니?)와 살고 있는 소녀는 길거리에서 꽃을 팔며 생활하고 있었다. 그녀를 사랑했던 방랑자는 소녀의 집에 쌓인 빚과 그녀의 병을 모른척 할 수 없었다. 내기 권투와 술주정뱅이 부자친구(?)와 얽히며 가짜 신사 채플린의 고난은 시작된다.

<시티 라이트>의 첫 장면, 평화와 번영(Peace and Prosperity)를 기원하며 도시의 사람들에게
바친다는 조각상에 자고 있었던 채플린. 조각 위에서 신발끈을 고쳐 신는가 하면 조각상의 얼굴에
엉덩이를 부비기 까지 한다. 조각상 따위가 그들을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이 영화를 찍게 된 영감이 되었던 장면(<Chaplin>,1992) 유성영화에 대해서 논쟁하던 중
(채플린은 유성영화에 대해서 굉장히 비판적이었다. 초반에 나온 조각상을 찬양하던 공직자도
우스꽝스러운소리를 낸다.) 문 닫는 소리로 부랑자가 부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영감을 얻는다.
눈이 먼 소녀가 채플린의 옷에서 실을 뺀다. 소녀에게 '실을 잘 못 뽑고 있어!' 라고
 말하는 대신 그의 옷에서 계속 실을 뽑아 그녀에게 뽑아준다. 소녀가 장님이라는
것과, 채플린이 가난한 부랑자라는 설정으로 이러한 코믹한 장면을 연출한다.
그의 유머감각이 묻어나는 장면. 어렸을 때 본 <영구와 챔피언>이라는 코믹물이 생각났다.
 양 손을 빠르게 돌리면서 펀치를 하는 장면은 심형래씨는 이 영화에서차용한듯하다.
심판을 사이에 두고 피하는 가하면, 종에 그의 목을 매달아서 지금 봐도 웃긴 장면이 여러번 연출된다.
채플린은 자살을 할려고하는 부자를 구해주면서 그와 친하게 된다. 하지만 이 부자는 술에 취했을 때만 그에게 호의적이고, 술에서 깨면 그를 모른척 한다. 영화 줄거리 상에서 부랑자는 어느 정도의 돈이 필요하게 되는데, 채플린은 이 돈의 공급을 술에 취한 부자를 통해서 만들어 낸다. 부자에 대한 그의 불신이 느껴지는 대목. 결국 돈을 훔쳤다는 누명을 쓰고 잡혀간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 눈을 수술해 앞을 보게 된 소녀와 마주한 부랑자는 웃음과 울음이 뒤섞인 정말이지 묘한 표정을 짓는다. 채플린은 도시의 빛을 조각상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무일푼의 거지와 그것을 보지 못하는 소녀에서 찾으려고 했다. 소유하지 못 한자와 소유 유무를 구별할 수 없는 소녀의 사랑. 채플린은 우리의 도시를 밝히는 빛을 그런 '결핍'에서 찾으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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